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케이 신문 (문단 편집) == 소개 == 일본의 일간지 중 [[보수]], [[우익]], [[반공주의|반공]], [[혐한]] 성향이 가장 강한 [[신문]]으로 알려져있다. 심지어 종종 [[극우]] 성향 일간지라고도 평가받는데,[* 일반적으로 외신에선 산케이를 적당히 '우익 언론' 정도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산케이의 정치적 성향이 극우적인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제도권에 정착한 언론이기 때문에 에둘러서 지칭해 주는 것. 다만 '극우'라는 설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일례로 [[포브스]]에서도 산케이를 두고 '일본의 극우 신문(Japan's far right newpaper)'이라고 대놓고 지칭한 적이 있었으며[[https://forbes.com/sites/adelsteinjake/2017/10/30/japan-may-be-moving-right-politically-but-its-communist-party-still-holds-some-sway-with-voters/?sh=4f5526c97dfc|#]], [[연합뉴스]]에서도 도쿄 특파원이 송고한 기사에서 산케이를 '극우 보수 성향'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339284|#]]] 때문인지 일본 [[넷 우익]]들이 신봉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참고로 산케이 신문의 전신이 되는 신문들 중 하나가 '지지신보(時事新報)'인데, 이곳은 [[일본 제국|일본 제국주의]] 사상의 정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창간했고[* 인물 자체는 활동 초기엔 자유주의, 계몽주의적 성향도 보였다.], 그 유명한 [[탈아론]]이 연재된 곳이기도 하다. 1935년 오사카 출신 사업가인 마에다 히사키치(前田久吉)가 지지신보를 인수하여 산케이 신문으로 바꾸었고, 2차대전 이후 방송 사업[* 후지TV, 칸사이TV, 닛폰방송, 라디오 오사카]에도 뛰어들어 현재와 같은 후지산케이 미디어 그룹이 형성됐다. 또한 [[도쿄 타워]] 건설에도 관여했다. 창업자 사주 마에다가 경영하던 중에는 성향이 왼쪽에 가까웠는데, 당시 일본의 이른바 "재계 4천왕" 중 하나라고 하던 미즈노 시게오라는 자가 정부와 재계들의 사주를 받아 마에다에게 헐값을 주고 내쫓은 후 방송장악을 하여 정부와 재계의 나팔수로 전락하고 현재의 극우성향으로 급커브하게 되었다. 좌우 안티들에겐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 기관지'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친 자민당 언론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는 일본의 혁신, 좌파 진영 뿐만 아니라,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를 비롯한 일부 신우파들에게도 지적받는 지점. 실제 일반인이 보기에도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일본 자민당 내각을 옹호하거나, 무턱대고 찬양하는 기사가 종종 실리긴 한다. 예를 들어 '북미정상회담은 알고 보면 아베가 트럼프 정권에 조언해서 이뤄진 거다' 라는 식.(...) 이 때문에 일본의 [[입헌민주당(2020년)|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공산당]] 등과 같은 '자민당식 [[평화헌법]] 개헌론'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정치적으로 개혁적 성향의 [[아사히 신문]] 등과는 매우 반목하는 사이다. 외교적으로는 논조가 친미 성향이라고는 하지만, 이 또한 [[보수본류|일본 내의 주류적 스탠스]]와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내의 주류 보수 친미 블럭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요미우리 신문]]이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꽤 껄끄러워 하는 편인 것에 반해, 산케이 신문은 이를 칭송한다. 덕분에 산케이 신문에 대해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 포스트]]는 외부 사설을 통해 "1930년대풍 [[군국주의]]로의 복귀를 바라는 폭력적 그룹의 일원"이라며 비꼬기도 했을 정도. 미국의 다른 유력지인 [[뉴욕 타임즈]]와도 사이가 나빠서, 산케이에 대한 비판 기사나 반박 기사를 자주 싣는다. 논조와 이념이 극단적이라는 평가, 그리고 읽을 거리가 적다는 [[https://nanyade.livedoor.blog/archives/18873419.html|평가]] 때문인지 현재 산케이의 매출과 발행 부수는 2010년대 일본 전국지들 중 가장 적었으며, 이 때문에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신문 산업이 급감하고 지출이 증가하여 2020년엔 전국망 간판까지 포기하게 되었다.[[https://kansai-sanpo.com/sankei2020/|#]] 앞으론 수도권과 관서권 중심 판매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는데 잘될진 미지수.[* 다만 산케이 신문은 원래부터가 관동 지역과 관서 지역에서만 보는 전국지 간판을 단 사실상 지방지긴 했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산케이 신문의 발행부수는 150만부였지만, 도쿄 본사 63만부, 오사카 본사 87만부였기 때문에 99% 이상이 일본 수도권과 관서 지방에서만 보는 신문이었다.[[https://kansai-sanpo.com/sankei2020/|#]]] 그만큼 일본 전국지들 중 가장 전망이 어두우며, 오죽하면 경영사정이 지방지인 [[주니치 신문]][* 물론 주니치 신문 자체가 지방지 중 돋보이는 1위 기업이긴 하다. 단독부수만으로도 산케이를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며, [[후지TV]] 네트워크 및 [[독립방송국]] 내에서도 강력한 발언권이 있다.]+[[도쿄신문]][* 주니치신문의 자회사로, 주니치는 일찍부터 방송사업 지분투자 및 사업다각화 등으로 리스크 분산을 꾀했다.] 및 블록지에도 밀리고 있다. 2019년 신규채용을 2명으로 대폭 줄였으며,[* 여담으로 동시기 [[아사히 신문]]은 72명, [[마이니치 신문]]은 61명, [[요미우리 신문]]은 80명을 채용했다.[[https://www.huffingtonpost.jp/entry/sankei_jp_5c73ac13e4b00eed08367f26|#]]] 180명 희망 퇴직을 받을만큼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이다.[* 참고로 180명은 산케이신문 전체 직원수의 1할 정도에 해당되는 인원이라고 한다.][[https://www.huffingtonpost.jp/entry/sankei_jp_5c73ac13e4b00eed08367f26|#]] 게다가, 산케이신문 사장은 [[후지TV]]의 지주회사인 후지미디어홀딩스(약칭 FMH)의 사장단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서 "산케이신문의 경영이 어려우니, 그룹 차원의 지원을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지만, FMH의 내부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FMH 내부에서는 주가 폭락의 우려 때문에 산케이신문이 자회사가 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편이지만, 산케이신문에 우호적인 [[아베 신조]]의 권유(?), 그리고 총무성의 방송 재승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기사도 있었다.[[https://dot.asahi.com/aera/2019102100040.html?page=1|#]] 게다가 산케이신문뿐만 아니라 [[후지테레비]] 역시 시청률 하락으로 대규모 해고를 할만큼 사정이 안 좋기도 하여 다른 곳 챙길 입장이 못된다 [[https://gendai.ismedia.jp/articles/-/90159|#]]] 경영사정이 얼마나 안 좋으면 혐한반중 신문사 인상이 너무 강하여 광고주들에게 제대로 [[광고]]를 못 받고 있다며 하소연하고 있으며, 이런 인상을 탈피하기 위해 '''기사 논조까지 수정'''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퍼질 정도이다.[[https://wpb.shueisha.co.jp/news/society/2018/12/19/107811/|#]][[https://dot.asahi.com/aera/2019102100040.html?page=1|#]] 허나 이렇게 열악한 경영사정에 비해, 의외로 일본 인터넷상에서 발휘하는 영향은 꽤 큰 편인데, 이는 [[넷 우익]]과 [[혐한]]들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기사를 많이 내놓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다른 언론들과 달리 '''무료'''로 인터넷에 기사 대부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큰 요인 중 하나다. 그래서 이게 일본 젊은층들의 우경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도 듣는다. 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을 일으켰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가 이 신문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우익 성향 역사교과서 출판사인 후소샤가 후지-산케이 계열의 미디어 회사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웹을 좀 뒤져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일본 [[넷 우익]]들이 최대의 정보 소스로 이용하는 곳이다. 거기에다가 [[구로다 가쓰히로|한국지부장]]이라는 어그로꾼은 툭하면 혐한을 일삼다보니 [[키배]]의 재물이 되기도 한다. 이렇기에 일본에서도 산케이신문 읽는 사람은 넷 우익 아니냐는 식의 시선을 받는다. 아예 경제 관련 전문 뉴스를 읽으려면 [[니혼게이자이 신문]]을 권한다. 한국어를 잘하는 기자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최고참이 [[구로다 가쓰히로]]이다. 이 사람은 2020년 기준 한국에서만 40년 가까이 살았다.], 이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전달해야지라기보단 한국에서 뭔 일 터지면 어떻게든 잘 깔 수(...) 있기 위해서라고. 덕분에 일본 신문 중에선 북한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편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소스가 풍부할 뿐이지 장사를 위한 자극적인 기사를 많이 내놓기 때문에 [[오보]]도 당연히 많으며, 2010년대 쯤부턴 소스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편이다. 실제로 보면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기사를 실을 때가 상당히 많은데, 2018년 2월엔 기자가 취재도 제대로 안 하고 [[오키나와]] [[주일미군|미군]] 관련 [[카더라]]성 오보를 냈다가 사실 여부에 의문을 품은 류큐신보, 오키나와타임스 등 다른 신문사들과 팩트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가짜뉴스]]로 밝혀져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http://news.donga.com/3/all/20180209/88582467/1|#]][* 산케이는 전국취재망이 상당히 약한 편이라, 지방뉴스는 정확성이 더 뒤쳐지는 편이다.] 어쨌거나 자회사인 후지TV가 1960년대에 대만 방송국 [[TTV]]의[* 21세기 들어선 위상이 예전같지 않지만, 1970~90년대까지는 나름 대만 3대 방송국으로 손꼽혔을만큼 제법 세가 있는 방송국이었다.] 지분 일부분을 취득했기 때문에 당시엔 중화민국 정부와의 관계도 나름 돈독했고, 연장선상에서 1970년대 말에는 산케이 신문이 중화민국(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장개석비록>이라는 것도 출판했는데, 여기서 중화민국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난징 대학살]] 30만 명 사망설을 기재하는 등 가끔 성향이 어딘지 헷갈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일본 극우들은 장개석비록을 불쏘시개라고 비난한다.] 그 외 중국의 언론 탄압도 집요하게 까는 등 반공자유(?) 노선 하나는 분명한 신문이라는 평가도 있다.[[http://shindonga.donga.com/3/all/13/101077/1|#]] --근데 어째 다 수십 년 전 소스들-- 허나 정작 남한의 군부독재정권은 [[내로남불|옹호한]] [[흑역사]]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산케이신문은 자극적인 기사나 써대며 돈도 안되는 넷 우익을 대상으로 조회수 장사질이나 하는 망해가는 신문사이다.[* 기사를 무료로 풀어서 조회수 장사질이나 하며 지방지로 전락한 산케이 신문과는 반대로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종이신문 발행 수가 일본 4대 전국지 중 가장 적지만 인터넷 유료 구독자수 93만 명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 유료 구독 상품이 4천엔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봤을 때 산케이와 비교할 수 없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애초에 주요 경제지라는 점에서 이제는 사실상 간판만 경제지인 산케이와 비교하는 것부터가 넌센스.] 지금은 지방 신문에도 밀리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 신규 채용할 돈도, 회사를 경영할 돈도 없어 재직 중인 직원들까지 백명 단위로 명예퇴직 시키는 상황이다. 다른 일본 신문들처럼 유료 구독으로 수익 모델을 바꿔보려 해도 산케이 신문의 독자들은 돈도 없는 넷 우익들이 대부분이라 그러지도 못한다.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 셈. 그에 비해서 존재감이 큰 이유는 일본 미디어 중 가장 [[한국]]과 [[중국]]의 어그로를 많이 끌면서 최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